카테고리 없음

소풍

삼태마을 2024. 3. 28. 09:21

 

전남 법성포 영광에서

세 줄 일기(2024.3.28 목 비)

어제는 아내와 함께 선산 부모님 산소에 다녀왔고, 오늘은 인터넷 강의에 수강을 해야 한다. 내일은 대전에서 아파트모임에 참석할 예정이다.

 

소풍

고향(故鄕)의 선산에 있는 부모님 산소에 오르니 산소 주변에 있던 작은 잡목들이 어느새 큰 나무로 상장하여 산소의 잔디가 자라는데 지장을 주고 있었다. 벌초를 할 때 아이들이 무덤 주위만 재초를 하여 잡목이나 참나무를 제거하지 않아 묘소 주변 관리를 해야 했다. 그러나 80이 다 된 나이로 나무를 베고 잔디를 보호하기에는 내 체력이 부족했다. 이런 나의 모습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그래도 산소 주변의 작은 잡목과 잡초를 제거하였다. 

 

3년 전에 처가의 밭 주변에서 캐논 할미꽃이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옛날에는 마을 뒷동산에 오르거나 산 밑의 밭 주변에서는 할미꽃을 보는 것이 어렵지 않았는데 요즘은 할미꽃을 보기가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할미꽃이 약초로 확인되면서 극성스러운 사람들의 손에 의해 멸종 위기에 처해있다. 옛날 고향은 산에 오르면 할미꽃과 진달래 개나리 봄나물들이 뒤덮었는데 지금은 구경하기도 힘들다.. 그래도 나의 묵밭에는 할미꽃과 여러 가지 봄나물과 산나물이 많이 있다. *묵밭(묵정밭의 준말) :오래 묵혀 거칠어진 밭

나의 묵밭에는 산부추와 산달래가 많이 있으며 각종 나물(곤드레. 방풍. 등 약초)이 많이 있다. 봄이 오면 시골시장에서 나는 각종 약초와 호박이나 머위를 심어 옛날 고향의 봄소식을 함께 하려고 노력한다.

 

옛날 국민학교를 다닐 무렵 봄소풍과 가을 소풍을 다녀온 적이 있다. 그때는 소풍을 어른들께서 원족이라 한 것 같다. 먼 곳에 있는 곳으로 걸어 다녀온다 해서 원족이라 한 것 같다. 소풍 갈 때에는 도시락을 갖고 가는데 도시락이 없는 아이들은 사기그릇으로 된 밥사발을 수건으로 덮어은 도시락을 갖고 소풍을 갔다. 6.25 전쟁이 끝난 후 휴전 협정이 될 무렵에 국민학교를 다닐 때라 물자가 부족해서 도시락이 없는 친구도 있었으며 신발은 모두가 운동화 대신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소풍 도시락에 달걀을 삶아 가는 친구들은 한 두명에 그쳤다. 도시락의 반찬은 밥 옆에 김치나 무장아찌를 조금 담은 도시락이었다. 지금 학생들은 이해가 되지 않는 도시락이라 하겠다.

 

70년이 넘은 국민학교 다닐 때의 소풍 장소는 고향의 시냇가로 멱을 감던 금강 상류의 냇가이었다. 지금은 옛날처럼 맑은 시냇물은 흐르지 않지만 70년 전의 기억은 떠오른다. 손에 쥐면 보드라운 아이의 피부 같은 모래알과 조그만 자갈들이 많았던 강변에서 뛰어놀던 국민하교 시절 친구들의 얼굴이 보고 싶다. 어깨동무하며 뛰어놀던 그리운 친구들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조금 있다가 하늘나라에서나 만날 수 있을는지? 

 

 

대전천 천변 꽃길

소풍

 

70년 전 소풍가기 전 날

자다가도 엄마한테

"내일 비 오지 않겠지"

"비 오면 어떡하지"

 

보자기에 꼭 묶은 도시락

어깨에 메고 달음박질 

 

술래잡기하던 손수건

내가 좋아던 순이 뒤에 던졌다.

 

아이들이 순이 좋아한다고

얼럴레 얼럴레 순이 좋아한다네....

독일 수정이네 화단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