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줄 일기(2024.11.7 목 맑음)
어제는 00 모임에 참석하였고, 오늘은 목요회총무 역할을 해야 한다. 내일은 00 모임에 참석하고 근린공원에서 운동을 할 예정이다.
입동(立冬)이 오면
오늘은 겨울로 들어선다는 입동(立冬)이다. 우리나라는 네 계계절이 있어 사람살기가 아주 좋은 나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요즈음은 옛날에 있던 삼한사온(三寒四溫)도 사라지고 봄과 가을이 실종되는 사건이 많이 발생헀다. 지난여름은 무더위가 아니고 폭염(暴:햇빛 쪼일 폭 炎:불꽃 염)이 계속되어 전 국민들을 괴롭혀왔다. 지구도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다. 그러나 무더운 여름도 세월 앞에는 꼼짝 못 하고 입동(立冬) 형한테 자리를 빼앗기기 마련이다.
옛 고향 시골의 겨울 추억
옛날 고향 시골에서는 입동(立冬)이 가까워오면 남자들은 초가지붕에 이엉을 올리고, 여자들은 김장 준비를 하는 것이 시골 농촌 마을 사람들의 일이었다. 마당에서 아버지와 아저씨들이 이엉을 엮을 때는 집안의 닭들이 모두 나와 벼 낟알을 서로 주워 먹으려고 소란을 피웠다. 그리고 어머니와 누나들은 우물가와 시냇물이 흐르는 냇가에서 무와 배추를 씻으면서 김장 준비를 하였다.
음력 시월이면 모든 집안에서 시제를 지냈다. 옛날 시골에서는 5대조 이상 선조들의 제사를 산소에 직접 가서 시제를 지냈다. 선조들의 묘소가 멀리 있으면 먼 길을 도보로 가서 시제를 지냈다. 어떤 때는 눈이 올 때도 있었고, 비바람을 맞으면서 제사를 올릴 때도 있었다. 제사가 끝나면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떡과 과자 과일을 골고루 나누어 주셨다. 1950 - 1960년대의 우리나라는 먹고살기가 매우 어려운 시기라 떡이나 과자 과일은 아이들이 먹을 수가 없어 시제를 모실 때는 아이들이 너무 많아 모여들었다. 떡의 크기가 아이들의 손바닥 크기로 매우 적어 어린아이들의 입에 넣는 것이 게눈 감추듯 금방 먹어 버렸다. 그러나 이제는 산에 있는 산소에서 시제를 모시는 집안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옛날 김장에 사용하던 배추는 속이 텅 빈 파란 배추로 김장을 하였다. 지금처럼 농업이 발달되지 않아 배추 속이 꽉 차지 않고 배추 속이 헐렁한 파란 배추로 김장을 하였다. 그러나 부 짓집에서는 배추 속이 노랗게 꽉 찬 좋은 배추로 김장을 하였다. 파란 배추로 김장을 하는 집은 살림이 가난한 서민들이나, 남의 집 종살이나 막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파란 배추 속이 덜 찬 잎이 파란 배추로 김장을 하였다.
입동이 되기 전에 남자 어르신들은 방문짝에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곳에 새로운 문종이를 바르는 일과 겨울을 나는데 필요한 땔감 준비를 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여자 어르신들은 아이들의 헌 옷을 꿰매거나 겨울 옷을 마련 새로 마련하는데 밤늦도록 바느질을 하셨다. 옛날 아이들의 겨울 옷은 솜바지와 저고리를 입었다. 베옷 속에 두툼한 솜을 넣어 만든 옷이라 활동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옛날 아이들의 겨울 놀이는 연 날리기와 팽이치기. 자치기. 술래잡기. 뒷동산에서 볏짚 썰매 타기 등이 있었다. 마을 뒷동산에서 볏단으로 만든 간이 썰매를 타는 것은 아이들에게는 아주 재미있는 놀이였다. 마을 뒷동산에서 날리는 연날리기는 정말 재미가 많았다. 그리고 날씨가 매우 추워 커다란 물논이 꽝꽝 얼으면 온 동네 아이들의 썰매장이 된다. 커다란 물논이 하얀 얼음판이 되면 스케이트를 타는 아이들의 천국이 된다. 썰매를 타다가 얼음이 깨져서 솜바지가 물에 흠뻑 젖으면 추운 겨울에 감기도 걸리며 어머니에게 큰 꾸중을 듣게 된다.
겨울이 오면
쌩쌩 불어오는 겨울바람에
손이 시러워 발이 시러워
밤중에 메이리치는
군밤 사려
찹쌀떡 메밀묵....
그리운 추억이
살아 움직이는 고향의
아름다운 그림이 올라온다.